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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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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최승자.

이런 이름이라서 저런 글을 쓸 수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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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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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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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넷 다섯도 못 넘기고 지붕도 하늘도 새도 보이잖고 그러나 난 죽으면서 보았어 나와 내 아이가 이 도시의 시궁창 속으로 시궁창 속으로 세월의 자궁 속으로 한없이 흘러가던 것을 그때부터야 나는 이 지상에 한 무덤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고 나의 아이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나쁜놈, 난 널 죽여 버리고 말 거야 널 내속에서 다시 낳고야 말거야 내 아이는 드센 바람에 불려 지상에 떨어지면 내 무덤 속에서 몇 달간 따스하게 지내다 또다시 떠나가지 저 차가운 하늘 바다로,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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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년대는 공포였고 팔십년대는 치욕이었다. 이제 이 세기말은 내게 무슨 낙인을 찍어줄 것인가. 한계가 낭떠러지를 부른다. 낭떠러지가 바다를 부여잡는다. 내가 화가 나면 나를 개 패듯 패줄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오 맞아 죽은 개가 되고 싶다. 맞아 죽은 개의 가죽으로 만든 양탄자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이십일세기 동안 당신들의 발밑에 밟히며 넝마가 되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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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여전히 컹컹거린다. 그는 시간의 가시뼈를 잘못 삼켰다.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의 뼈를 그러나 시인은 삼켰고 그리고 잘못 삼켰다. 이 피곤한 컹컹거림을 멈추게 해다오. 이 대열에서 벗어나게 해다오. 내 심장에서 고요히,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나는 누워 비디오로 보고 싶다. 그리고 폐광처럼 깊은 잠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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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 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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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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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부터는 공부를 시작하자. 에세이도 준비하고. 건너에 있는 창문에 놓인 내가 노닥거리는 것도 응원하고.

그러함에 괜찮다고 말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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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차암 온다. 이렇게 쏟아지는 것이 어던 신호인 것처럼. 쏟아지고 괴이는 물웅덩이를 밟아도 남지 않는 흔적. 신나게, 나는 거리를 쏘다닌다. 내가 없듯이, 내가 번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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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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