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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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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날 걷다 보면 소년이 고인 물속을 바라보고 

괜찮냐 새끼야?라고 묻는 건 소년의 누나다 

더러워진 교복, 누나 냄새나 소년의 뒷걸음질에 누나는 손날로 동생을 혼내준다

싸운 거냐? 동생은 미간을 찌푸리며 꽥 소리 지르고 오줌이라도 튄 것처럼 불쾌한 얼굴로 누나는

이젠 주먹을 쥔다 살려다 그랬다 새끼야

누나는 자주 살기 위해 옷을 더럽혔다

소년이 물어도 누나는 씨발 씨발 거리면서

교복을 손빨래한다

운동장 흙은 애새끼들의 땀과 침, 흘린 콜라 같은 게 섞여 있으니까 

십이 년 된 통돌이 세탁기로는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니 손빨래한다

퉁퉁 부은 손등에 누런 거품이 옮겨붙는다

누나 내가 할까

됐다 꺼져라 내 몫이다

소년은 하드를 입에 물고 문지방에 앉아서 누나를 본다

고군분투하는 인간은 저렇게 구부러진 몸으로 소름 끼치는 안광을 내뿜으며

빨래를 하는 거구나, 소년은 깨닫는다

분노에 자주 맞닥뜨리는 누나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씨발 너만 처먹냐

아니지, 누나 거도 사 왔지 

난 왜 칠백 원 짜리고 넌 천이백 원 짜리냐?

손날에 소년의 이마가 빨갛게 변한다 

누런 거품이 묻은 짱구 이마 

개 같은 누나라고 속으로 불평을 엎지르고 

하지만, 소년은 안다

누나는 살려고 저런 거다

누나는 죽이지 않으려 저런 거다

소년은 간신히 혓바닥을 올려붙이며 천천히


누나, 절대 지지마


라 말하고 누나는 소년을 바라본다


주먹을 쥐며 


교복에 남은 붉은 표식 하나를 짓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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