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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방





부드러운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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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고 말했더니, 천장의 무늬 중 하나가 이마를 맞댄다. 우리도 그래. 나도 모르게 웃었지. 그랬구나, 하며. 날 좋아했구나. 그늘을 가볍게 만들고, 진한 햇살을 일부러 거울에 반사되도록 했구나. 빛났다. 어느 날 문득 눈을 떠 바라본 내 방이. 너무다 밝아서 행복했지. 이게 다, 네가 나를 좋아해서 그런 거였구나. 나는 또 웃고 말았다. 몸을 비틀며 엉엉, 울 때면 일부러 밖의 소음을 끌고 와  우는소리를 옆방에 들리지 않도록 했지. 유난히 크던 개 짖는 소리와 갑자기 불행해진 신혼부부의 고성이 내 고통을 덮어 씌웠지. 고마웠어. 나는 습기에 부르튼 하얀 벽지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바르르 떠는 건. 근처 대단지 아파트 공사장의 때문만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너는 나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나의 방. 나의 비참함을 알고 있는 방. 나의 무질서한 애정을 알고 있는 방. 들여놓은 관엽식물에게, 공기도, 햇빛도 주지 않고서 죽여버렸잖아. 애정의 행방은 자신에게만 주기를 바라던 질투. 첫 경험이었지. 그래서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었나 봐. 걷어찬 이불. 드러난 몸 위로 너는 커튼을 조금 열어 빛을 끌고 내려왔지. 나는 반짝거린다. 자, 내 몸을 펼쳐 말할게. 나의 우울, 먹어치우며. 너는 내게 모든 무늬 쏟아내기를! 영원히 그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소문의 인간. 아침 6시 23분. 기상 후 미지근한 보리차를 마신다. 좋아한다고. 벽을 향해, 천장을 향해, 빛바랜 블라인드를 향해. 그리고 나를 향해 말하지. 좋아해. 마신 보리차가 몸속의 체온을 만날 때까지. 오늘은 부드럽고 내일은 쌀쌀맞더라도. 그럼에도. 방이 삼킨, 방이 소유한 나는 그림자조차 실명해버렸고. 다정이 지나쳐 은신처를 사랑해버리고 말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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