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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작명



사소한 작명


모른다, 잘 모르니까 굳이 이름 붙여 사랑-이라 하는 걸지도 몰라. 심장이 우주 끄트머리에 던져져서 제멋대로 쿵쾅거리는 것. 서서히 호흡이 가늘어지는 것. 조용히 스미는 순간을 사랑이라 하는 걸지도. 당신이 슬픔과 눈물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니까,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놓은 것. 꿈에서 만난 것처럼 사소한 잔상에 의미 두는 것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으니까, 그냥 그걸 사랑이라 하는 것. 어머니가 들꽃을 찍은 사진과, 아버지가 일군 채소 수확물을 보고 더 이상 울지 않으려, 입술 꾹 쥐는 것을 일컬어 사랑이라 하는 것을. 다들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 이 얄미운 인간들. 마구잡이로 붙여진 단어에 온통 맘 빼앗기고, 우리는 어여쁜 새끼가 되어 또 사랑. 초라한 웃음에도 그 주름 귀엽다며. 헛소리를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새끼들.

햇빛이 노랗게. 새끼들의 얼굴 위로 익어간다.

여름이 오고 있어. 

슬며시, 찾아온 그것처럼.

그것이 낸 상처처럼, 입술을 벌려 그 이름을 발음한다. 

하지만 모르면서, 끝내 모를 거면서.

그럼에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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