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늙은 문제



늙은 문제


/



새벽 술상을 마주하고서, 노친네 기침에게 묻는다. 보호구역이 없는 삶. 어떠하냐고. 뺨에 길게 베인 자국. 늙을수록 주름보다 선명해지는 상처. 이제는 부끄럽지 않냐고. 노친네는 고개를 가로 젖는다. 부끄러운 것보다 무의미해진다고. 술잔이 채워지길 기다리던 젊은 날. 술잔이 비워지는 대화를 기다리는 나날이 된 지금. 다 무의미하다고. 노친네, 쩍쩍 갈라지는 마른 나무껍질처럼. 힘없이 백반집 테이블 위로 쓰러진다. 정수리에서 풍기는 조용한 악취. 나이 사이사이마다 영글어버린 죄목들. 이걸 다 어찌하냐며. 그래서 대가리가 무거워지니까. 나이 들수록 테이블 위로 쉬이 쓰러진다는 노친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술잔에 독한 술을 채워주는 것뿐. 천천히 대가리를 드는 그의 추잡한 입이 간신히 떼었다 붙는다. 쪽팔리게. 씨발. 고맙네, 고마워. 그 사이 우리는 또 나이를 먹으며. 동시에 술잔을 비운다. 멋진 촌극. 이보다 더할 길 없으니 우리는 약속한다. 더욱 비참해지자고. 기침을 하며 쪼그라드는 노친네. 그림자보다 작아지는 생의 기력.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기 0001  (0) 2018.05.24
사소한 작명  (0) 2018.05.24
서치 리스트  (0) 2018.05.23
꼬리  (0) 2018.05.23
옆집  (0) 2018.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