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결한 형




청결한 형







말씨가 부드러운 연두부 같은 형이


조곤조곤, 욕을 한다


왜 인지 모르겠어 자고 일어나니 화가 마구 났어


형의 불그레한 얼굴 


블이 휩쓸고 간 벌거숭이산처럼, 터럭이 뽑혀 소름이 돋은 둔부처럼


형, 하고 동생은 형을 부른다 어느 때보다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면서 


오늘 아침은 어제 먹은 토스트로 하자 딱딱했던 빵을 억지로 다시 익혀 질겅질겅 씹는다


형제는 잇몸이 튼튼해지고 어금니에 걸린 빵조각을 혀로 긁어내던 형은, 어제 회사에서 잘렸어 오늘 알바라도 알아봐야 해


질겅질겅, 오케이. 동생은 짜고 단 식빵을 끝까지 해치운다




뭐라도 해치우고 싶어


뭐라도 목을 조르고 싶어




형이 한 잠꼬대는 알려주지 말아야지 동생은 사려 깊어서 형의 화를 들쑤시지 않는다 이건 부모의 싸움으로부터, 어른의 조소로부터, 아이들의 정신병으로부터 배운 것




현관에서 형을 마중한다 형 몸에 걸쳐진지 6개월이 된 스트라이프 상아색 정장


바짓단에 형이 토한 김밥속 우엉이 묻어있지만 동생은 사려 깊으니까 모른 척한다


아는 사람에게 들키는 것보다 모르는 떼거리에게 비웃음 당하는 게 나으니까




형이 현관문을 연다


동생은 입속에 남은 빵을 우물거리고 잘 다녀와라는 말도 함께 씹어 삼키며 손을 흔든다


우린 좀 단단해질 필요가 있어


부모 몰래 한 다짐을 상기하며 헤어지는 형제




형은 돌아오면 또 욕을 할 것이다


꼴등인 동생을, 남긴 것 없이 허리 굽은 부모를, 건사하겠다고 우격다짐한 자신을


그리고 나서 목 조를 것이다


세상에 걸쳐진 모든 얼굴들을


머리 위에 걸린 걸레의 물기를 빼듯 


비틀어 버릴 것이다


손바닥이 시뻘겋게 될 때까지

충분히 지저분해질 때까지




형은 캄캄해질 것이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기 0016  (0) 2018.07.16
일기 0015  (0) 2018.07.09
미러  (0) 2018.07.05
애정욕구  (0) 2018.07.05
일기 0014  (0) 2018.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