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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옆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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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되면, 가능한 겁니까. 무너지기 직전의 철탑에서 손인사를 목격해도, 생면부지 사람에게 뺨을 맞아도, 토기가 쏠릴 만큼 더러운 일로 돈을 벌어도, 나는 이것마저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까. 행복하다면요. 어미가 아흔 넘은 늙은이의 똥물을 받아야 하고, 아비는 야간에 잠도 제대로 못 들어 꾸벅꾸벅, 모자란 밤을 지새워야 하는 걸 보고도.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면 정말 행복한 것입니까. 모든 종교를 혐오하는 주제에, 힘들 때 두 손 맞잡아 무릎 꿇고서. 왜 나한테 자꾸 이러는 건데요!라고 소리치는 것은. 옆집 사내가 벽을 두드리며 닥치라고 하는 것은. 신이 내게 내린 결과입니까 아니면 과정입니까? 나는 오래간만의 파란 하늘 아래서, 노을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십 칠층 옥상에서 종이를 잘게 찢어 버렸습니다. 흩날리는. 반짝이는 하얀 종이가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어제 적은 시 한 구절. 어디에 내놓아도, 유치한 낙서로 기억될 나의 숨이 파란 하늘에 섞여갑니다. 모아둔 시집을 폐지함에 버리고 나면, 나는 이제 멀건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오늘 본 뉴스는 생활고에 시달려 마트에서 절도한 인간의 사연이었습니다. 괜찮습니까? 이 모든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찢어진 이 입을 용서해줄 사람, 어디에. 폐지함을 뒤지는 노인의 손은 왜 시집을 포기하는지. 나는 또 왜 내게 저걸 보여주냐며 소리질렀고, 사내는 벽을 칩니다. 닥치라고. 제발 좀 닥쳐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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